QT

QT

5/4(금) 심히 통곡하니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인터내셔널갈보리교회 작성일18-05-01 00:40 조회102회 댓글3건

본문

5794049406a25f298bcefeb54dd9861e_1525102825_1449.png
5794049406a25f298bcefeb54dd9861e_1525102837_8496.png
 

댓글목록

sharon님의 댓글

sharon 작성일

묵상, 베드로의 통곡,  눅 22:62

베드로가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OBSERVATION

Summary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에게 잡혀가시고 베드로가 부인하는 장면이다

Who is God
• 예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
• 예수님은 유대 제사장에게 체포되셨다,

APPLICATION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체포되시는 순간부터 계속하여 예수님을 따라왔다.  베드로는 주님 곁을 쉽게 떠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한다.  우리는 그의 결심을 기억한다. “주를 위하여 애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그런 베드로를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지다,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다른 제자들은 다 도망갔는데, 예수님의 안부가 궁금하여 제사장의 집까지 따라간 은 그래도 예수님의 수 제자 베드로다왔다. 그런데, 그가 직면한 환경은 너무 살기가 등등했고 겁에 질려버린 베드로는 조그마한 계집종앞에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했다. 마태복음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맹세하며 저주했다고 기록한다.  그런데 이 순간, 예수님은 베드로를 돌아보셨다. 

자신을 돌아보시는 예수님과 눈이 마주친 순간,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고,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 했다.  어떤 눈물이었을까? 자신이 부인할 것조차 아신 주님을 배신한 자신의 죄에 대한 깊은 아픔의 눈물, 후회와 회개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대제사장도, 하속도 쳐다보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통곡하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에 생각 날 말씀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 순간 주님의 말씀을 기억했을 것이다,  특히 ”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 (눅 22:31-32)  생각났을 것이다.  과연 주님은 그를 끝까지 붙잡아 주시사. 그 이름 베드로처럼 반석같은 초대 교회의 든든한 지도자가 되었고 위대한 주님의 사도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한다, 그렇다, 우리가 말씀을 기억하면 실족하는 순간, 눈물이 날 수 있다,  마음에 의심과 원망이 밀려오고, 주님을 부인하는 그 순간이라도 주님 곁에 가까이 머무르며, 주님의 눈을 바라보는 것만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는 것만은 포기하지 말아야한다,  끝까지 주님 가까이 있으며 말씀을 기억한 것, 그것이 베드로 회복의 비결이었다.

오늘 베드로의 이 연약한 모습은 나의 연약함일지도 모른다, 예수님의 고난을 알면서도,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히신 희생을 알면서도, 눈 앞에 다가온 고난의 환경 때문에, 유혹 때문에, 베드로처럼 주님을 모르는 척, 죄를 짓고, 주님을 부인하며 원망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그 죄 짓는 그 순간,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통곡한 적은 없는가? 그리고, 다시 찾아 오셔서 용서하시고, 위로하시고, 회복시키시는 사랑과 은혜를 무수히 경험하며 오늘에 이른 것이다,  베드로처럼 주님을 부인하는 순간이라도 주님 곁에 머무르며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자. 그러면 반드시 주님은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Sin to avoid,  외적인 환경때문에 주님을 부인하고 원망하지 말라
Promsie to hold, 우리가 붙잡는 주님의 말씀은 우리를 회복시키신다
Action to take, 가장 어려운 순간이라도 주님 앞에 나아가고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기억하자

하나님 아버지, 오늘 베드로의 연약함이 저의 연약함인 것을 고백합니다.  어떤 순간이라도 주님 곁을 떠나지 말게 하시고 주님의 말씀을 붙들게 하옵소서,

JnLe님의 댓글

JnLe 작성일

Lk 22:54-62
In His Name (Who is our Lord Jesus?)

SCRIPTURE
Having arrested Him, they led Him away and brought Him to the house of the high priest, but Peter was following at a distance.. The Lord turned and looked at Peter. And Peter remembered the word of the Lord, how He had told him, “Before a rooster crows today, you will deny Me three times.” (Lk 22:54-61)

OBSERVATION

Summary
Our Lord gets arrested and led into a high priest, and Peter denies Him 3 times.

Who is God?
- The true high priest, who was mocked before a high priest (마침내 '제사장' 앞에서까지 모진 수모를 겪으시되, 죄없으시고 참되신 하나님의 제사장)
- The true Savior, who reaffirmed 3 times the one who had denied Him 3 times. (주님을 세 번 배반한 자를 세 번 부르시고 회복시키신 진정한 구세주)
- The Name above all names, who rescued a devastated follower who denied Him three times.. (주님의 이름을 세 번 부인한 파선한 듯한 제자를 완전히 구해주신 그래서 어떠한 저주 또는 어떠한 그럴듯한 이 세상의 유혹보다 높으시고 위대한 진정 모든 이름 위에 높은 이름)

APPLICATION

주님은 누구신가? 참된 대제사장이시다. 그런데 이 땅에서 대제사장에게 심문을 받으신다. 과연 나의 대제사장은 누구인가? 주님이 나의 대제사장이심을 알아야 할 것이다. 특별히 어려움이 있는가? 정말 네 대제사장이 누구신지 물어보고 대답하고 알라.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 분은 누구신가? 모진 수모를 겪으시되 죄없으시고 참되신 하나님의 제사장, 즉 참되신 우리를 위한 제사장이시다.

[히4: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히4:15] 우리에게 있는 데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주님은 누구신가? 진정한 구세주이시다. 우리의 두려움과 많은 문제는 우리의 깨어짐, insecurity에서 출발한다. 일례로 우리는 100가지 좋은 일이 있어도 1가지 어려운 일로 인하여 마음 힘들어 하고 아파하기 쉬운 존재다. 하나의 문제가 우리의 깨어짐에 반응할 때 문제가 문제를 낳는 소위 ‘악순환’이 파파팍-하고 일어난다. 누군가 한 번 우리에게 상처줘도 회복하지 못하고 어려워하는 게 상처받은, 깨어진 인간들의 연약한 모습이다. 그런데 베드로는 어떠한가? 아무리 둘러봐도 좋은 일 하나 없는 상태에 있으신 주님을 3번 부인한다.

This man was with Him, too. ------> Woman, I do not know Him. (그 분과의 관계를 부인)
You are one of them too! ------> Man, I am not! (그 분을 통한 자신의 정체성을 부인)
Certainly this man also was with Him ------> Man, I do not know what you are talking about.
For he is a Galilean too.           (자신의 실존, 자신이 알고 듣는 것까지 부인)

그런데 이렇게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를 주님은 세 번을 부르신다. 그리고 사랑하냐고 물어보신다. '너 나한테 왜 그랬어?'라고 세 번을 묻는 것이 깨어진 인간의 일상적 모습이었다면 (아니 이보다 더 무서운 건 완전한 냉대와 단절일 수도 있겠다) 주님은 그에게 다가오셔서 '너 나 사랑하니?'라고 세 번 물으신다.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모습을 드러내시되, 마치 배반한 상대방보다 더 vulnerable하신 위치에서, 하지만 완전히 용서하시고 사랑하시는 분으로 물으시는 것이다.

Simon, son of John, do you love Me more than these?------>Yes, Lord; You know that I love You
Tend My lambs

Simon, son of John, do you love Me?------>Yes, Lord; You know that I love You
Shepherd My sheep

Simon, son of John, do you love Me?------>Lord, You know all things. You know that I love You.
Tend My sheep        

주님은 정말 사랑받을 수 없는 자를 사랑하시되 찾아오셔서 구원하시는 구세주이시다.

주님은 누구신가? 정말 ‘모든 이름 위에 높은 이름'이시다. 주님을 세 번 부인하였음은 주님의 ‘이름’을 세 번 부인하였음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 정죄에 얼마나 시달리는가? 아니, 시달림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알게 모르게 얼마나 주님을 부인하는가? 그런데 주님의 이름이 정말 높으신 건 무엇인가? 이렇게 주님의 이름을 부인한 자가 주님께 돌아왔을 때, 아니 주님께 돌아오게 하신 후에 주님의 이름으로 ‘내게 은과 금은 없지만, 내게 있는 것,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나니 일어나 걸으라’ 명했을 때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기까지 역사하시는 진정 모든 이름 위에 높은 이름이시다.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도 ‘모든 이름 위에 높은 이름’ 그 분의 이름을 의지하고 선포하며 살아가야 한다. 마음의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주님께 달려가야 한다. 오늘 엉엉 울고, 주님 나타나셨을 때 깨어진 모습 그대로 갈릴리 바다물에 텀벙 뛰어들어 주님을 향해 나아갔던 베드로처럼,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처럼

예수님은 누구신가 우는 자의 위로와
없는 자의 풍성이며 천한 자의 높음과
잡힌 자의 놓임되고 우리 기쁨 되시네

Who, you ask me, is my Jesus?
Mourner’s Comforter is He
He is plenty for the needy
Higher for all of low degree
He’s the freedom of the captive
And our joy eternally

PRAYER

주님, 우리의 참된 제사장, 진정한 구세주, 정말 모든 이름 위에 높은 이름이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 영광을 받아주옵소서. 주님께 나아가오니 치유하시고 회복하시고 부흥을 허락하시고 모든 영광을 홀로 받아 주옵시고 주님 나라 임하게 하옵소서. 늘 언제나 마음의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주님께 회개하고 은혜의 보좌 위에 담대히 나아가는 자 되게 하여 주옵시고, 이를 통해 주님 허락하신 영혼들에게도 진정한 주님의 위로와 영향을 전하는 자가 되게 한량 없는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Benjamin님의 댓글

Benjamin 작성일

20180504눅 22:54-62 심히 통곡하니라
눅 22:62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OBSERVATION

Summary
끌려가신 예수님을 베드로가 따라갔으나 새벽닭이 울기전에 세번 주님을 부정한다.

Who is God
• 예수님은 인간의 연약함을 완전히 아신다.
• 모든 상황과 일의 진행은 예수님의 주권가운데 진행되었다.

APPLICATION
인간은 누구나 죽음앞에서 두려움을 느낀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달아났다. 지금의 시대에 와서야 연좌제가 보편적으로 폐지되었지만 오랫동안 동서양을 막론하고 연좌제를 통해 국가 체제를 유지하였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제자라는 타이틀만 가지고도 처벌 받을 것이 두려워 달아나 숨었다. 베드로는 두려움 속에 멀찍이 따라갔고 모르는 사람인양 스파이처럼 대제사장의 뜰에서 불을 쬐면서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보고 있는 것이다. 54절의 ‘멀찍이 따라가니라’라는 말씀이 베드로의 갈등을 보여주는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 곰곰 생각해 본다. 예수라는 이름을 밖으로 내놓기만 해도 죽을 수 있는 장소에서, 성경책을 소지하기만 해도 죽을 수 있는 장소에서, 복음을 믿는다라는 말을 할때 죽을 수 있는 장소에서,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라는 고백을 하기만 해도 죽을 수 있는 장소에서 나는 과연 그렇게 고백을 하고 성경을 들고 죽음을 향해 걸어갈 수 있는가?
교회를 다닌다 해서 법적인 통제가 전혀 없는 환경에서의 ‘나는 복음을 믿습니다. 나는 예수를 믿습니다’라는 고백과 기독교 핍박의 1위를 달리는 나라인 북한에서 위의 고백을 하는 것과 어떤 고백이 더 뜨겁고 진정성이 있는가? 물론 어디에 있건, 어떤 환경에서건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 있다고 자부할 수 있겠으나… 오늘 베드로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그는 예수님의 최 측근으로 남이 볼 수 없는 기적도 보았던 제자였다. 그런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정하였다면 나 또한 한번도 맞닥뜨려보지 못한 환경에서 어떻게 행동할지,,,, 이전의 고백을 그대로 들고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을지,,,,오늘의 묵상을 통해 심각하게 생각해 본다. 오직 주님의 동행하심만을 기도할 뿐이다. 언제 어디에서건 동일한 고백이 될때,,,
 비로소
빌립보4: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하박국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말씀이 내 삶에 임할 것임을 믿는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연약함을 기도로 올려드릴 뿐이다. 

Sin to avoid: 제한 없는 믿음의 환경에서 스스로 경건생활에 나태와 안일로 살지 않았나 회개한다.
Promise to hold:  흔들림 없는 고백이 내 삶에 뿌리를 내릴때 빌립보 4장 13절의 말씀을 살아 갈 수 있을 것이다.
Action to take: 기도로, 예배로, 찬양으로  항상 동일한 고백이 뿌리내리고 줄기가 자라고 가지가 맺히고 열매가 열리는 훈련을 하자.

Prayer
주님, 베드로와의 에피소드를 통해 저에게 신앙의 고백을 점검할 기회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능력주시는자 안에서 모든 일을 할 수 있도록 저의 고백이 언제나 동일하도록 붙들어 주옵소서!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