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보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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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믿음을 점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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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인터내셔널갈보리교회 작성일24-08-23 11:21 조회1,3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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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3장,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가 치유받은 기적에 대해 사람들이 놀라며 모이자,  베드로는 이 기적적 치유의 요인이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 이라고 말한다.( 행 3:16)  이 본문을 묵상하며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되었다. 베드로는 이미 행 2:36 가운데, “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께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 고 외친 바 있다.  우리가 예수님에 대하여 믿어야 할 바는 예수님이 우리의 주이시고 그리스도이시라는 사실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입술로는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한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때 많은 사람들이 입술로는 주여 주여 고백하지만,  , 당신이 모르는 자들이라 경고하신다. ( 마 7:21-22) 즉 그들에게 구원이 없다는 의미이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보시고 제자들을 선택하시고 믿음을 보시고 칭찬하시며 믿음에 따라 기적을 베풀어 주셨다.  그리고 저들이 믿지 않을 때에 아무런 권능도 행하실 수 없으셨다. 예수님께서 찾으시는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 


김원태 목사님께서 귀한 책을 쓰셨다. “ 예수가 주인되는 복음” 에서, 김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 한국 교회의 가장 큰 문제가 예수님을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그리스도로만 믿고 주인으로 모시지 않는 것이다.”   이어서 초대 교회 이야기를 하셨다. “ 왜 로마 황제들이 유독 기독교인을 핍박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들이  황제를 주라고 부르지 않고 예수를 주 (큐리오스) 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로마인들은 서로 만나면 ‘큐리오스 카이사르라’ 는 말로 황제에게 충성을 다한다는 인사를 하였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만나면 ‘큐리오스 예수스’  결국  이 고백 때문에 그들은 순교하였다. 살아남은 자들은 박해를 피해 카타콤에 들어가 살았다. 로마 부근의 카타콤은  지하 공동묘지로 약 600만 구의 시신이 묻혀 있다. 그곳에 엄청난 시신이 묻힌 이유는 초대 교회 교인들이 로마 황제의 핍박을 피해 그곳에 숨어 살았기 때문이다.  주후 63년에 시작된 네로 황제의 핍박으로부터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주후  313년까지 무려 250 년을 이곳에서 숨어 살았다. 놀라운 것은 그곳에서 발견된 시신들의 키가 일 미터 20 센티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연구진에 의하면 지하 묘지에서 햇빛을 보지 못하고 살아서 키가 자라지 않았다는 것이다. 초대 교인들은 그런 엄청난 희생을 치르면서 주의 이름을 부르고 믿음을 지켰다.  나면서 앉은 뱅이를 일으킨 베드로가 설명하고자 한 예수 믿는 믿음은 바로 이런 믿음이었다.  


롬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바울은  우리가 구원받기 위하여 2 가지를 강조한다. 예수를 주로 시인하는 것과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는 것,  바울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논하기 전에 예수를 주로 시인하는 것을 먼저 언급했다.  한 때 우리  교회 리더들의 필독서로 읽혀진 바 있던 “ 리즈 하월즈 의 생애” 에는 이런 간증이 있다.  리즈 하월즈가 어느날 성령과의 만남을 사모하게 되었다. 그랬을 때 성령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에게는 나의 성전이 되어질 몸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몸은 절대적으로 나에게만 속한 것이여야 한다. 서로 뜻이 다른 두사람이 한 몸안에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제 네 몸을 나에게 주겠느냐? 나는 나와 너를 섞지 않을 것이다. 즉 네가 나가야 한다.” 리즈 하월즈 목사님은 커다란 마음의 갈등에 부딪혔다. “지난 26년동안 내 몸을 주장해온 자는 나였는데 어떻게 쉽사리 다른 분에게 송두리째 자기 몸을 내어줄 수 있는가?”   이 결정을 내리는데 5일이 걸렸다. 그는 말한다. “성령께서 다루시는 것은 죄가 아니라 나라는 자아였다. 성령이 원하는 것은 자아로 가득찬 내 본성의 뿌리를 뽑아 내는 것이다. 그것은 피상적인 굴복이 아니다. 그분은 나의 자아의 삶에 일일이 그분의 손가락을 갖다 대었다. 그리고 한 걸음씩 내 자아의 본성을 당신 자신의 성품으로 바꾸어 가셨다.” 물론 이렇게 성령께 자아를 철저히 굴복시키고  복종해 가는 과정은 호된 연단과 훈련의 기간이었다. 모든 물질을 거두시며 철저히 주님만 의지하는 훈련도 시키시고, 자기의 아이를 남에게 주며 육신의 정을 끊어버리는 훈련도 통과시키시고, 인간의 기본적인 자존심을 부인하며 수치감을 참아내는 훈련도 겪어내야했다.  그러나 철저하게 성령께 굴복시키며 주님이 온전한 주인이 되셨을 때, 리즈 하월즈 목사님은 성령의 큰 능력가운데 남 아프리카에서 놀라운 부흥을 주도하셨고, 수많은 기적의 사역을 감당하였고, 엄청난 자원을 공급하시며 신학교를 건립하게 하시고, 전 세계를 품는 중보기도 사역을 펼침으로 이스라엘 독립등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이 땅에 이룰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이처럼 예수님을 온전히 주인으로 모시며, 자아를  주께 복종시키는 자에게  성령을 아낌없이 부으시며 큰 능력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신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며 순복하며 사는 자는 겸손한 자요, 내가 주인노릇하고자 하는 자는 교만한 자이다. 겸손의 표지는 고난가운데 나타난다.  겸손한 자는 주인의 뜻에 순복하기에 고난의 상황을 받아들이며 이렇게 기도한다. "주님, 당신이 사랑하사 제게 허락하신 고난인 줄 믿기에, 저는 이 시련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   “주님. 주님”  이렇게 예수님을 부르면서 우리는 정말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며 살아가고 있는가?  김원태 목사님이 최근에 이런 메세지를 보내셨다. “ 저희 교회는 예수가 그리스도임과 주인이심이 되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고 가르치고 특히 예수의 주되심을 강조하면서 교회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너무 행복한 교회가 되었고 교회도 부흥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점검하자. 



이 성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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