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보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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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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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인터내셔널갈보리교회 작성일19-02-01 07:40 조회2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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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7은 나찌의 만행 가운데 학살된 600만 유대인과 그외 무수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홀로코스트 기념일이었습니다. 1945127, 폴란드 남부에 위치한 Auschwitz-Birkenau 죽음의 수용소가 드디어 자유를 향한 문을 열었던 것입니다. 홀로코스트 기념일을 맞이하여 Joel Rosenberg블로그에는 아우슈비츠를 탈출한 4명의 영웅적 유대인들에 관한 회고 컬럼이 올라왔습니다. 110만명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가스실에서 죽어갔는데, 히틀러가 자살하기 약 1년 전, 용감하게 이 무시무시한 죽음의 수용소를 탈출한 4명의 유대인 청년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자신들의 목숨만을 구하기 위하여 탈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실상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것만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헝가리 유대인들을 전멸코자 하는 나찌의 계획을 알게 되었고 어찌하던지 이를 중단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들의 이름은 슬로바키아계 유대인, Rudolf Vrba, Alfred Wetzler, 이들은 1944, 47, 아우슈비츠에서 도주했고, 슬로바키아계Arnost Rosin 와 폴란드 계 Czeslaw Mordowicz 1944, 527 일 도주했습니다. 이들은 체코슬로바키아에 무사히 도착한 후, 즉시 유대인 지하 모임을 찾아갔습니다. 당시 세상은 대부분 아유슈비츠 수용소를 강제 노동 수용소로 알고 있었는데, 이 청년들은 그 수용소가 죽음의 수용소이며 나찌는 아주 조직적으로 죄수들을 살해하되, 특히 유대인들을 죽이며, Zyklon B라는 유독가스를 사용하고, 그들의 시체는 엄청나게 큰 오븐에 들어가 태워진다고 진술했습니다. 또한 나찌는 아우슈비츠에서 조금 떨어진 Birkenau 라는 곳으로 수용소를 확장하기 위해 지금 초대형 철로와 가스실과 거대한 규모의 화장 시설을 공사중이며, 수용소에 실려온 자들을 곧바로 가스실로 운반하는 램프는 이미 완성되었다고 보고하였습니다. 그들이 엿들은 바에 의하면 나찌는 헝가리에 있는 45만 유대인들을 아우슈비츠로 데려올 계획이며 곧 도착할 것이라는 그야말로 숨막히는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이 청년들은 체코의 유대인 지도자들에게 즉시 헝가리 유대인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어, 그들로 빨리 도주하게 해야하며, 절대로 아우슈비트 행 기차는 타지 말것을 긴급히 경고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연합군 지도자들에게 어떤 방법으로든지 아우슈비츠 상황을 알려서 이 죽음의 수용소를 신속히 개방해 줄것을 강력히 요청했습니다. 나중에 도주한 유대인 청년들 역시 동일한 진술을 하였고 이렇게 하여 소위 “Auschwitz Protocol“ (아우슈비츠 의전)1944 6월 유대인 지도자들과 연합군 지도자들에게 보내어졌는데, 이 내용이 언론에 유출되었고 국제 사회 여론은 들끓게 됩니다. 예상했듯 독일은 515일 수많은 헝가리 유대인들을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냅니다. “아우슈비츠 의전은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과 영국의 처칠 수상에게 전해졌고 연합군은 D-Day를 감행합니다. 72, 미국은 부다페스트 폭격을 감행하였고, 헝가리 수뇌부는 결국 유대인 아우슈비츠 추방령을 철회합니다. 이렇게 하여 12만명 이상의 헝가리계 유대인들이 죽음 직전에서 구출받게 됩니다. 영국의 역사가 Martin Gilbert경은 후에 “‘아우슈비츠 의전2차 세계 대전 중 단번에 가장 많은 유대인 구출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고 평가하였습니다. 왜 미국군이나 영국군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관한 정보를 이미 알았을터인데 즉시 군사 행동을 취하지 않았는지 사람들은 의문합니다. 1945, 아우슈비츠가 문을 열었을 때에는 7000 명의 유대인들만 남겨져 있었고 이미 110만명의 유대인들은 가스실에서 학살되었습니다. 최근 중동 상황은 심각합니다. 얼마 전 이스라엘이 시리아에 설치한 이란의 무기창고 및 정보시설에 공습을 가하자 아지즈 나시르자데흐 이란의 공군 사령관은 이스라엘을 파괴할 결정적인 전쟁 준비를 하였다고 경고하였습니다. 이란의 핵시설은 이미 알려져 있습니다. 로젠버그의 주장처럼, 아우슈비츠의 가슴아픈 역사를 기억한다면 국제 무대는 이란의 이같은 위험한 경고에 대하여 더 늦기 전에 행동을 취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이성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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